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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린튼家의 한국 사랑

유진벨 / 2024

한남대 설립자 윌리엄 A 린튼家의 한국 사랑

일제 침탈 세계에 호소… 대이어 봉사

[국민일보 2006-05-06]



한남대 설립자인 인돈(1891∼1960) 목사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면서 시작된 ‘린튼家’의 한국 사랑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인돈 목사는 1912년 9월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 파송으로 한국에 왔다.

그는 한국 사랑을 삶으로 보여주었다. 1919년 3∙1운동을 목격한 인돈 목사는 같은 해 8월 미국 남부지역 평신도대회에 참석해 일제의 한반도 침탈과 3∙1운동의 비폭력 저항정신을 알렸다. 전주신흥학교 교장 시절에는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자진 폐교하는 등 한국 독립을 위해 앞장섰다. 또 6∙25전쟁 때는 피란 명령에도 불구하고 전주에 남아 성경학교를 운영했다.

인돈 목사는 말년에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젊은 지도자 양성이라고 생각하고 1956년 대전기독학관을 설립했고 1959년 대전대학(현재의 한남대학)으로 인가를 받아 초대 학장에 취임했다. 인돈 목사는 이듬해인 1960년 6월 미국으로 건너가 병원에 입원했으나 병세가 너무 깊어져 8월 소천했다. 그러나 그의 한국 사랑은 대를 이어 계속됐다.

한국에서 선배 선교사인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 목사의 딸 샬럿(한국명 인사례)과 결혼한 인돈 목사는 슬하에 네 아들을 뒀고 한국에서 고교까지 교육을 시켰다. 셋째인 휴(1926∼1984∙한국명 인휴)와 넷째인 드와이트(78∙한국명 인도아)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교육•의료활동을 펼쳤다. 드와이트는 호남신학대 학장을 역임했다.

인휴 목사의 아내 베티(79∙한국명 인애자)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소천한 뒤 전남 순천에 남아 30년간 결핵재활원을 운영했다. 그녀는 이 공로로 국민훈장과 호암상을 받았다. 또 인휴 목사의 장남인 스티브(55∙한국명 인세반)는 1994년 유진벨재단을 설립해 대북 의료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고 차남인 존(46∙한국명 인요한)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또 지난해엔 생명공학분야에서 다국적 회사를 운영하는 빌 린튼 3세가 방한,대덕연구단지에 첨단과학 분야를 특화한 한남대 제2캠퍼스 조성을 지원키로 하는 등 린튼 일가의 한국 사랑은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

이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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