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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시대] 유진벨은 통일 실험실

유진벨 / 646

[만나고 싶었습니다] 인세반 유진벨재단 회장

[통일시대 2월호 표지]

큰 키에 짙은 갈색 머리, 우뚝한 콧날의 그는 전형적인 서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입을 여는 순간, 들리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말투와 발음. 이름마저 스테판 린튼이 아닌 한국인 &lsquo인세반&rsquo으로 50여년을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왔던 그는 유진벨 재단을 설립해 12년간 대북의료지원사업에 몸바쳐왔다. 그의 남다른 삶 속에서 남한은, 그리고 북한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ldquo북한 결핵퇴치 사업 &lsquo10년 한길&rsquo 유진벨은 통일 실험실입니다&rdquo

&ldquo12년간 유진벨의 대북지원 사업을 통해서 북한 주민들의 남한에 대한 거부반응,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가장 큰 보람이 아닌가 싶어요.&rdquo 지난해 유진벨재단 설립 12주년을 맞은 인세반 회장의 소감이다. 처음 유진벨 재단은 미국에 살고 있는 동포들이 대북지원운동을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인 회장은 &ldquo당시 북한에 물품은 보내도 후원자의 신분을 밝힐 수 없었던 단점을 보완하고 소규모로 실속 있게 대북 지원을 하자는 것이 창립 취지였다&rdquo고 설명했다.


&ldquo통일을 위해선 먼저 북한 주민들의 건강문제에 큰 관심 가져야&rdquo

물론 결핵퇴치사업을 시작했던 대북지원초기에는 후원자 이름을 표기하기는커녕 결핵약에 한글조차 쓸 수 없었다. 한번은 저렴한 값에 보내느라 약 포장이 제대로 안된 약이 있었는데 북한에서 이를 &lsquo누군가 손댄 약&rsquo이라고 의심해 한바탕 소동이일기도 했다. 결국 며칠 후 정상적인 약으로 판명나기는 했지만 인세반 회장은 &ldquo그때만큼 긴장한 적이 없었다&rdquo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처럼 대북사업 초창기에 북한은 남한에 대한 경계심을 한순간도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은 약표기부터 사용법까지 한글로 보내는 것은 물론, 후원자들의 이름까지 일일이 물품에 적어 보내고 있다. 특히 결핵약은 한국 약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한국산 약을 주지 않으면 주민들이 서운해 할 정도로 거부감이 사라졌다. 이는 그간 남한의 대북지원운동 전체가 만들어낸 성과이기도 하지만 유진벨만의 &lsquo역투명성&rsquo도 한 몫 한 결과다.

&ldquo그간 남한에서 대북지원에 대한 투명성 요구는 많았지만 역투명성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진벨은 처음부터 후원자를 밝히는 등 역투명성을 갖췄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북한의 신뢰를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rdquo

또한 그는 북측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약속만 했다. 10개까지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더라도 7개만 약속했다. 7개를 약속하고 그 이상을 보내면 기뻐하지만, 10개를 약속하고 9개만 보내도 북측입장에서는 실망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외국인을 제외하고 여전히 남한의 후원자는 물론 해외의 한국 동포들이 북한의 대북지원 현장을 방문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북지원운동이 활발해지면서 한국 후원자들이 평양을 대거 방문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곤 하지만 유진벨재단에게는 아직 먼 얘기다, 이는 유진벨재단이 일반인은 접근하기 힘든 북한의 가장 척박한 지방 현장을 주요 의료지원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인세반 회장은 &ldquo한국인 후원자들이 북한 전역의 대북지원현장을 자유로이 방문하는 날, 유진벨재단의 소임도 마무리 될 것&rdquo이라며 어서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ldquo큰 병원 세우는 것보다 20~30개 병원 치료기능 높이는 게 더 현실적&rdquo

유진벨재단은 창립 때부터 &lsquo가장 어려운 곳, 가장 필요한곳에 효율적으로 지원하자&rsquo는 원칙을 지켜왔다. 때문에 1997년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결핵퇴치사업을 벌여왔다. 다행히 올해부터 세계보건기국에서 북한의 결핵퇴치에 나설 예정이라 인세반 회장은 일반 결핵보다 치료가 훨씬 어렵다는 &lsquo내성결핵&rsquo으로 방향을 전환할 생각이다.

또 하나 준비하고 있는 사업은 북한이 요청한 구역병원 현대화 사업. 중앙급이나 도급 병원은 남측의 지원을 많이 받아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북한 주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구역병원의 경우 의료시설이 매우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세반 회장은 병원 현대화라고 해서 건물 하나 지어주는 식의 지원에는 관심이 없다. 큰 병원 하나 세우는 값으로 20~30개 병원의 치료 기능을 강화하는 패키지를 지원하는 것이 훨씬 많은 북한 주민을 도울 수 있을 뿐더러 현실에도 맞다는 것이다.

&ldquo통일을 염두에 둔다면 북한 사람들의 건강문제에도 장기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의료분야는 잘못하면 천문학적인 바용이 들게 마련이죠. 그런 면에서 유진벨재단은 가장 효율적인 의료지원 방법을 찾는 통일의 실험실인 셈입니다.&rdquo


&ldquo대북 결핵퇴치사업을 10년째 펼치고 있는 유진벨재단은 창립 때부터 &lsquo가장 어려운 곳,
가장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지원하자&rsquo는 원칙을 지켜왔다.&rdquo


지난해 11월, 인세반 회장은 2주 동안 북한을 방문해 정주시, 신의주시, 구성시, 곽산군 등 각지에 흩어져 있는 결핵요양소와 구역병원을 찾아다녔다. 이번에도 예전부터 그와 함께 일하던 의료진 몇 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 자신도 북한에서 두 번이나 결핵에 걸려 고생했지만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다 약과 지원물품이 없어 생명을 잃는 이들을 볼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그러나 동시에 &ldquo유진벨의 도움 덕분에 살아났다&rdquo며 그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는 순박한 주민들을 접할 때면 다시금 생명의 소중함을 뼛속깊이 느끼게 된다는 그다.

널리 알려졌듯 인세반 회장은 4대째 한국에서 활동한 미국인 선교사 집안의 아들이다. &lsquo유진벨&rsquo이라는 이름도 선교사였던 외증조부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도 어렸을 때 한국에 와서 교육받았으며 그의 동생이자 저명한 의사인 인요한 박사는 아예 한국에서 태어났다.

인세반 회장이 북한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lsquo한반도의 한쪽 면만 보았으니 이제 다른 쪽 면도 보고 싶다&rsquo라는 호기심이었다. 그렇게 대학에서 초창기 대북지원운동을 학술적으로 연구한 그는 남북한의 실정에 맞는 대북지원모델을 창안해 미국에서 책으로 발표했다. 그러자 미국의 교민들이 그에게 자꾸 대북지원에 써달라며 수표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유진벨재단이 태동하는 순간이었다.

인세반회장은 정부의 대북지원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인도주의적 지원은 계속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사람이 생명과 연관된 초정치적, 초정책적 지원사업은 차분하게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나 한국이 &lsquo제2의 고향&rsquo이라는 인세반 회장에게는 남북의 통일문제가 전혀 남의 일 같지 않다.

&ldquo요즘 들어 점점 남북의 양극화가 더 심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시간이 가면 더 힘들 어지겠죠. 대문에 대북지원운동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가끔씩 저는 통일된 한국을 꿈꾸곤 해요. 남북이 지금 사는 모습도 다이나믹하고 재미있는데 통일되면 얼마나 더 재미있을까요.&rdquo

인세반 회장의 갈색 눈동자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12여년간 대북지원운동을 꾸준히 펼쳐온 그의 웃음 속에 자연스레 배어있는 한민족의 넉넉함과 따뜻한 정(情), 바로 그것이었다.


서유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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