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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유진벨재단 스티븐 린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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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벨재단 스티븐 린튼 회장 "韓·美가 원하는 속도 아니지만 그래도 北은 변화중&rdquo


[세계일보 2007-08-17]

스티븐 린튼 유진벨재단 회장이 미국 워싱턴 시내에 있는 재단 미국사무소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북한에 부는 변화의 바람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스티븐 린튼(한국명 인세반) 박사는 북한에 대한 의료 지원을 전담하는 민간단체 유진벨 재단을 이끌면서 그동안 북한을 50여차례 방문하는 등 북한 사회의 변화를 직접 목격해온 한반도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린튼 박사는 최근 재미교포들의 북한 내 가족 상봉을 지원하는 업무를 전담하는 기관인 &lsquo샘소리&rsquo를 만들어 이르면 올가을부터 본격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도록 남북한과 미국 등을 오가며 주선작업을 벌이고 있다. 린튼 박사를 통해 한반도의 현주소를 진단해 본다.

&ldquo남과 북이 대화하는 것은 이유가 어떻든 일단 좋은 일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는 28일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은 긍정적이며, 남북한이 스스로 한반도의 미래를 열어간다는 측면에서 기대됩니다.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 활동이 활성화될 것으로 봅니다.&rdquo

지난 한 세기 동안 4대에 걸쳐 한국 사랑을 실천해오는 린튼 가(家)의 스티븐 린튼 유진벨 재단 회장은 미국 워싱턴 시내 국회의사당 건물 옆에 위치한 미국 사무소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ldquo모든 사회가 변화하듯 북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rdquo며 &ldquo그 바람은 경제적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노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불고 있다&rdquo고 말했다. 그는 &ldquo한국과 미국이 원하는 속도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지만 북한은 변하고 있고, 한국에서 차기에 누가 대통령에 취임해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인식할 것&rdquo이라고 덧붙였다.

―샘소리 활동을 통한 재미교포 이산가족 상봉 사업은 어떻게 돼가고 있나. 미국과 북한 관계가 아직 서먹서먹한데 북한이 재미교포 이산가족 상봉에 응할 것으로 보는가.

&ldquo미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 중 남북 이산가족의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미국 땅에 와서 조국 분단의 슬픔과 비극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민족 분단은 그 어떤 전쟁이나 무기보다 무서운 것이다. 미국과 북한 관계는 점점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 문제를 놓고 집중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재미교포의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려면 미국이 이 문제를 국내 문제로 간주해야 한다. 미국 시민권을 소유한 한국계 교민 중 최소 10만명가량이 이산가족이다. 이들 재미교포들이 자신의 지역구 의원들에게 청원을 함으로써 미 정치권과 의회가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 미 행정부가 결국 움직일 것이다.&rdquo


―유진벨 재단과 샘소리의 관계는.

&ldquo유진벨 재단 사업은 북한의 환자들을 돕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진벨 재단은 북한에서 이산가족 문제에 손을 댈 수가 없다. 그럼에도 유진벨 재단에 후원금을 내는 많은 재미교포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해 달라고 끊임없이 부탁한다. 이 때문에 미국 사회에서 재미교포들의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전담할 기관인 샘소리를 만들었다.&rdquo

―유진벨 재단의 재원은 어떻게 조달하며 연간 사업 규모는.

&ldquo재단 기금의 3분의 1가량은 한국 통일부의 통일기금으로부터 지원받고, 3분의 1가량은 한국의 교회와 시민단체 등의 지원금이며 나머지 3분의 1가량은 재미 한국 교포들의 후원금이다. 유진벨 재단은 한국 교민들이 북한 동포를 지원하는 길을 찾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연간 사업 규모는 200만&sim300만달러 정도이다.&rdquo

―얼마나 자주 북한을 방문하나.

&ldquo1979년 평양에서 열린 국제 탁구대회 참관차 관광객 자격으로 처음 북한을 방문했다. 그후 매년 2&sim3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 지금까지 50차례 이상 북한을 방문했지만 정확한 횟수는 잘 모르겠다.&rdquo

―북한을 자주 방문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느끼고 있나.

&ldquo북한의 경제 사정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주민들이 외국인과 외국을 상대하는 경험도 쌓여가고 있고, 외국인에 대한 협조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북한에 커다란 변화가 있다기보다 모든 사회가 변하듯이 일상적으로 변화가 일어난다고 봐야 할 것이다.&rdquo

―북한이 어떤 방향으로 변하고 있나.

&ldquo북한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더 이상 배급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경제 활동 노력을 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과거에는 외국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으나 지금은 나보나 더 잘 아는 북한인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북한 주민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크게 개선되고 있고, 한국인에 대한 거부 반응도 많이 사라지고 있다. 다만 북한 주민들의 미국에 대한 인식은 바뀌지 않고 있다.&rdquo


―북한 내에서 비정부기구(NGO)의 활동 추세는.

&ldquo북한이 영구적으로 외국인들과 더불어 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다. 북한에서 서양의 NGO보다 한국의 NGO 활동이 늘고 있는 것이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사실 동아시아 지역에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기술, 농업, 의료 관련 체제 등이 모두 갖춰져 있다. 한국, 일본, 중국이 빠른 경제 발전을 하면서 북한에 대한 지원품을 댈 수 있어 북한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먼 서양에서 가져올 이유가 없다. 유진벨 재단이 북한에 제공하기 위해 구매하는 의료 관련 품목의 대부분이 한국산이다. 북한에 특정 장비를 제공했다가 고장나면 부품을 가까운 동아시아에서 조달하는 게 경제적이다. 서양 NGO들의 북한 내 역할은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본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에도 커다란 변화가 오고 있다. 북한은 앞으로 긴급한 일이 생기면 한국의 119 전화를 돌릴지 모를 일이다.&rdquo

―그렇지만 한국의 진보 성향 정권은 끊임없이 대북 퍼주기 논란에 휘말려드는데.
&ldquo정부 차원의 대북 지원에는 정치적, 외교적, 전략적 요소가 개입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민심을 거스르면서 대북 지원을 계속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정부가 취하고 있는 정책은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rdquo

―대북 햇볕정책을 지지하는가.

&ldquo4대째 한국에서 살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손님이다. 손님이 주인의 부엌이나 화장실에서 깨끗하다, 어떻다고 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한국 정부의 정책은 논평하지 않겠다.&rdquo

―그렇다면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ldquo미국의 대북 정책이 정상화하려면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 나는 원수에게도 부드럽게 말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 북한을 굴복시키려 하거나 위협을 가해서는 안 된다. 솔직하고 예의바른 대화를 하는 것은 외교뿐 아니라 문화의 기본이다. 이런 대화 없이 무엇이 되겠는가.&rdquo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을 &lsquo악의 축&rsquo이라고 불렀는데.

&ldquo기독교에서는 내 자신이 죄인이라고 가르친다. 내 탓을 인정해야 한다. 선과 악은 어느 한쪽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 사회에 선한 무리와 악한 무리가 고정돼 있지는 않다. 우리가 벽을 넘을 수 없는 악한 무리는 없다.&rdquo

―부시 행정부가 남은 임기 1년 반 동안 무엇을 할 수 있나.

&ldquo부시 행정부 등 역대 미국 정부는 그동안 &lsquo수표 외교&rsquo에 치중해 왔다. 북한이 원하면 돈을 줄 수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외교에서는 상대를 인정해주고, 인간답게 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 북한이 마음의 안정을 느낄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 미국이 대북 제재를 해제함으로써 북한이 떳떳하게 돈을 벌면서 살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rdquo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강행하고 있지 않은가.

&ldquo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이유는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핵 개발에 따른 불이익이 너무 크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자살 기질은 없는 것 같다. 북한은 살 길이 보이면 핵무기 보유를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100 핵 포기를 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북한은 과거에 개발한 핵은 보유하되 미래의 핵 개발을 포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세상에 100의 해결책은 없다. 그것은 이상주의다.&rdquo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스티븐 린튼 박사는&hellip

스티븐 린튼 유진벨 재단 회장은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 사람 같다는 얘기를 듣는 미국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1950년 미국에서 태어난 뒤 4살 때 한국에서 기독교 선교 활동을 하던 부모를 따라 전남 순천으로 이민와 한국 학교를 다녔다. 이 덕분에 그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모국어인 영어 이상으로 유창하게 구사한다. 고등학교는 대전에 있는 외국인 학교를 다녔고, 연세대 철학과, 미국 어스킨대를 거쳐 프린스턴신학대에서 석사, 컬럼비아대 신학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린튼 회장 가문의 한국과의 인연은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린튼 회장의 외증조부 유진벨은 미국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로 부인 로티 위더스픈과 함께 한국에 도착해 전라도에서 선교와 교육 활동을 벌였다.

벨 목사 부부의 막내딸 샤롯트 벨은 윌리엄 린튼 목사와 결혼해 군산, 전주 등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인돈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알려진 윌리엄 린튼 목사 부부는 약 40년 동안 군산, 전주, 목포, 광주, 대전 등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지금의 한남대인 대전대학을 설립했다. 린튼 목사 부부의 삼남 휴 린튼(한국명 인휴) 목사 역시 한국으로 돌아와 전남 도서 지방 등 200여곳에 교회를 세웠다.

휴 린튼 부부는 1960년대 전남 순천 일대에 결핵 환자가 늘자 결핵진료소와 요양소를 세웠다. 스티븐 린튼은 휴 린튼 부부의 3남이다. 린튼 회장은 유진 벨 선교 100주년을 맞아 1995년에 미국, 2000년 한국에 각각 유진벨 재단을 설립했다.

유진벨 재단은 북한에 인도주의 차원에서 의료 지원 사업을 해오고 있다. 처음에는 북한의 식량난으로 인해 북한에 콩, 옥수수 등 곡물을 제공했으나 1997년 북한 당국으로부터 결핵퇴치 공식 지원 요청을 받은 이래 의료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린튼 회장은 2006년 재미교포의 북한 내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추진하는 기관인 샘소리를 설립했다. 샘소리는 북한에 있는 재미교포 가족 생사 확인, 상봉, 서신 교환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재미교포 이산가족이 거주지 하원의원에게 지원 요청을 하면 해당 의원이 국무부와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에 공식적인 상봉 요청서를 전달하며 샘소리는 이 같은 사업의 창구 역할을 맡고 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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