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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갤러리아] 생명을 살리는 든든한 전령

유진벨 / 557

[더 갤러리아 12월호] 생명을 살리는 든든한 전령

유진벨재단 대표 인세반



조유리 기자

파란 눈의 미국인이 유창한 한국어로 '북한을 돕자'고 말한다. 호기심으로 가졌던 관심, 실상은 놀라울 뿐이다.
자신은 '후원자의 심부름꾼'일 뿐이라며 한걸음 물러서지만 60년의 세월만큼 투터운 벽이 가로막혀 있는
남과 북 사이에 그 심부름꾼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는 이가 또 있을까. 그들이 하는 일에 정치적 방해물은 있을 수 없다.

1895년 미국에서 한국에 파견된 유진 벨(Eugene Bell. 한국명:배유진)선교사는 아내와 함께 한국에 도착해 전라도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다. 벨 목사의 딸이 윌리엄 린튼(인돈) 목사와 결혼한 뒤 전주와 군산 등지에서 다시 선교사로 봉사하며 대전대학(현 한남대)을 설립했다. 그들의 셋째 아들 휴 린튼(인휴) 목사 역시 한국에 돌아와 전남 일대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1960년대 순천 일대에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가자 결핵 진료소와 요양소를 세웠다. 둘째아들인 스테판 린튼(인세반)박사 역시 순천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부모님의 뜻을 따르게 되었으나 봉사의 지역은 이제 한국에서 북한으로 바뀌었다. 그가 유진 벨 선교사의 한국 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1995년, 미국과 한국에 설립한 비영리 대북 지원 민간단체가 바로 유진벨재단이다.
"저희가 지키는 두 가지 원칙이 있는데, 하나는 유진벨재단의 이름이 아닌 후원자의 이름으로 물품을 보내는 전달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철저하게 약품과 자재 등 소모품만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직접 북한에 들어갈 수 없는 분들을 위해 형식상 미국인인 제가, 북한에 물품을 전달하는 당나귀 역할을 할 뿐이고 인력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북한 의료진의 자존심과 주인의식을 지켜주기 위함입니다."
한국에는 아직도 북한을 돕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 이도 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나라에도 어려운 이들이 많은데 왜 멀리까지 가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세반 대표는 단호하게 말한다. "북한을 돕는 일에 정치성을 대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동등한 두 나라 중 어느 편을 돕느냐는 문제가 아니라, 의료 실정이 바닥안 한 나라를 돕자는 것이니까요. 북한의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지요. 아무리 못사는 한국인들도 북한에서는 잘사는 편에 들 것입니다." 말로만 설명하기에는 답답했는지 그는 모아 둔 사진 등 자료를 보여 주며 북한의 상황을 설명한다. 사진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수술 상황, 마취제가 없어 환자의 양팔과 다리를 붙잡은 채 시술하는 모습, 의사가 직접 방사선을 쬐며 환자들을 진단해 얼굴이 까맣게 타 버린 처참한 모습등이 담겨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진료하는 것을 보면 북한의 의료진은 희생정신으로 똘똘 뭉친 분들입니다. 자신의 건강을 해치며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들과 직접 만나다 보면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저벌로 샘솟습니다.

유진벨재단은 한번의 많은 지원보다는 그 성격에 맞는 패키지를 마련하여 개별 의료 기관에 지원하고 있다. 상급 의료 기관에서 물품을 지원받는 북한의 기본적인 의료 시스템을 인정해 상부 기관에만 대량 지원하면 실질적으로는 서로 나누어 갖지 않으므로 하부 기관은 언제나 빈곤한 상태인 것. 유진벨은 하부 기관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놓았다.
"현재 북한에서 가장 심각한 질병이 결핵입니다. 따라서 결핵 치료를 위한 약품들을 위주로 패키지를 꾸려 놓았습니다. 물론 결핵약과 영양제, 구급차와 경운기 등 개별 물품을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3만8000원이면 결핵 환자 한명을 살릴 수 있는 결핵약 6개월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북한을 돕는 것이 시급한 이유 중 하나는, 차후 정치적인 통일의 단계가 올 때, 북한 주민들을 치료하는 비용이 너무 커서 통일을 어렵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리 그들을 도와서 그 비용을 조금이나마 줄여 두는 것이 통일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가는 길인 것이다.
인세반 대표는 처음에는 경계하던 북한 주민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나눌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이제 1년에 두 번, 물품을 전달하고 한 번 후원품을 전달한 곳에 후속 처리를 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 정례화 되었다. 결핵에 대한 지원이 5, 6년 이루어진 시점에서 또 다른 분야의 지원 또한 요구되는 상황이다.
"결핵 환자의 몸이 약하거나 약을 잘못 써서 일반 약으로는 치료가 힘든 상태가 '내성결핵'입니다. 이의 심각성에 대한 북한 당국과 논의하는 중입니다. 더불어 모자(母子) 사업, 학생 건강을 위한 새로운 패키지도 도입할 생각입니다."
인세반 대표는 다시 한 번, '결핵이야말로 가장 비정치적인 병'임을 강조한다. 그만큼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기본적인 분야라는 것이다. 이러한 심각성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것이 대표의 호소다. 종종 미국을 오가며 양국에서 후원금 모금에 힘쓰는 인세반 대표, 통일이 조금 더 앞당겨진다면, 그의 공로도 그리 작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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