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언론속 유진벨

[문화일보]“南北, 서로 도움주는 방향으로 관계 재설계를”

유진벨 / 806

< Global View >

“南北, 서로 도움주는 방향으로 관계 재설계를”

스티브 린튼 유진벨재단 이사장



인터뷰 = 이미숙 정치부차장

유진벨 재단의 스티브 린튼(58) 이사장은 북한의 식량난이 시작되던 1995년부터 대북 식량 및 의료지원활동을 해온 한반도전문가다. 지난 13여년간 북한을 50여 차례 오가며 활동해 ‘북한이 가장 신뢰하는 미국인이자 북한을 가장 잘 알는 비정부기구(NGO)활동가’라는 평도 듣고 있다.

린튼 이사장은 올해부터 미정부가 시작하는 대북의료지원사업의 대행자로 선정되어 미 국무부 인사들과 함께 지난 2월28일부터 1일까지 방북, 북측과 의료지원문제를 협의한 뒤 귀국했다. 이명박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에 미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는 요즘, 린튼 이사장의 눈에 비친 북한의 분위기와 대북지원운동의 현황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린튼 이사장은 지난 3일 출국, 현재 미 동부 메릴랜드주 컬럼비아에 머물고 있어 대화는 전화로 이뤄졌다.


―이명박정부 출범 후 첫 방북길인데 북한 분위기는 어떻든가요?
“누구도 내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지켜보겠다는 입장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북핵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미 국무부와 국제개발처(USAID)가 대북의료지원사업에 나서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인데.
“미국은 한국 다음으로 북한에 가장 많은 식량지원을 해온 나라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국정부가 미국의 NGO를 통해 북한의 병원에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미국이 북한의 병원사업에 관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일이 잘되면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할 의지도 있는 듯하더군요.”

국무부의 대북의료지원사업의 대행자로는 유진벨 재단과 머시 코어, 사마리탄스 퍼스, 세계환경 자원행동센터 등이 선정됐고, 이 단체들은 국무부로부터 100만달러(9억원 상당)씩 받아 대북의료지원활동을 하게 된다. 유진벨의 경우 기존의 결핵퇴치활동을 하면서 국무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더하게 되는 것이다. 린튼 이사장은 이번 방북때 국무부인사들과 함께 북측인사들을 만나 의료지원사업 및 지원대상에 대해 논의했는데 아마 평양의 병원이 아니라 지방의 병원을 대상으로 시범지원사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진벨재단이 해오던 일에 미국정부가 공식 지원을 하게 된다는 의미도 있겠군요.
“우리는 1997년부터 북한의 결핵퇴치와 의료기자제 지원활동을 해왔는데 나머지 3개 재단은 일반 의약품과 중고의료장비 등을 제공해왔던 것으로 압니다. 유진벨은 의료부문에 있어서 북한에 가장 오래 지원해온 민간재단입니다.”

―대북지원 때마다 모니터링이 문제가 되는데 의료지원에서의 투명성은 어떻게 견지될까요?
“국제기구나 지원단체들이 북한에 요구하는 모니터링 수준은 그리 높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북한은 다른 수혜국들에 비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사실입니다. 이번 회의에서 북측은 모든 의료지원사업의 투명성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의료지원은 식량과 달라 모니터링 문제가 그리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2. 노무현시대와 이명박 시대의 대북NGO

―1997년 북한결핵퇴치운동을 벌이기 시작할 때와 요즘 북한의 의료시설면에 대해 어떤 차이가 있나요?
“당시 북한전역에 결핵이 아주 심했고 현대적인 약도 한두개밖에 없었으나 요즘에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만 의료장비면에서는 더 낙후됐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의 지방병원들에는 외부지원이 어려워 의료기자재가 30, 40년된 것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의료진은 아주 희생적이고 헌신적이고 직업의식이 강합니다.”

그는 1997년부터 북한전역의 70여 병원을 방문하며 의료기자제와 결핵치료제를 지원했는데 요즘에는 평안남북도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동북쪽지역은 세계보건기구(WHO)쪽에서 집중적으로 활동해서 역할분담을 하게 됐기 때문이란다.

―민간차원의 대북의료지원은 유진벨재단이 최초이자 최대 규모라고 봐야겠죠?
“개별적인 병원지원을 하는 기관들도 있지만 북한 전역에 걸쳐 가장 오랫동안 지원해온 단체는 유진벨입니다.”

―10여년간 변함없이 매년 30억원 안팎의 의료지원을 해올 수 있었던 비결은?
“한국사람들과 재미한인교포들이 기금을 보내주신 덕분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분들의 성의를 분배하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이명박 정부들어 유진벨재단 등 NGO들의 대북지원활동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아직 결정된 정책이 없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는 상황인데 과거와 큰 차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노무현정부는 NGO정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NGO의 정치적 발언권이 커졌고 NGO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많아졌는데.
“노무현정부때 NGO들에 대한 지원이 많아지면서 NGO숫자가 늘어났고 정치적 영향력도 커졌습니다. 그러나 NGO가 정부의 돈만으로 활동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민간의 지원금을 동시에 받으며서 활동을 하는 것이 NGO의 본뜻이 아닌가 합니다. 이명박정부는 NGO를 잘 평가해서 효율성과 역할을 살려나갔으면 합니다.”

#3 이명박시대 대북지원은 남북상호도움되는 방향으로

―이명박정부는 현재 김대중-노무현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에 대해 조언을 하신다면.
“남과 북이 서로에게 도움되는 일을 찾는 게 좋다고 봅니다. 지난 10년은 부유한 남쪽의 자원을 북쪽에 전해주는 시절이었지만 이제는 서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의료지원은 한반도 공동체에 도움되는 일, 남북 구분없이 한국사람들이 건강하고 잘살 수 있도록 만드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말씀은 이명박정부의 상호주의적 대북접근법과 큰 틀에서 별 차이가 없는 듯한데.
“모든 부분에서 상호주의는 어렵겠지만 결국은 서로 잘사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것이 통일에도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

―북한이 2006년 10월 핵실험을 한 것이 대북인도주의활동가들에게도 영향을 줬다고 보십니까?
“인도주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핵실험이전과 이후의 북한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도주의는 인도주의 자체로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인도주의를 당근으로 사용하는 것에도 반대하지만, 정치에 영향을 주려는 인도주의에도 반대합니다. 저는 북한이 평화지향적 정책을 채택했으면 합니다. 핵을 실험한다고 해서 경제가 나아지거나 결핵환자들의 병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반도 연구자에서 대북지원활동가로 변신하게 된 배경은?
“1995년 북한에 식량난이 본격화하면서 북한당국이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지원요청을 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컬럼비아대 교수로 있으면서 대북식량지원을 위한 유진벨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재미한인들과 미국인들이 보내준 기금으로 중국에서 식량을 구입해 북한에 보내기 시작했죠. 결핵약 지원은 1997년쯤 북한당국의 요청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결핵을 앓아본 사람으로서 외면하기 어려워 그때부터 결핵퇴치지원활동을 시작한 것이죠. 그때만 해도 한국사람들이 직접 대북지원활동을 할 수있을 때까지 몇년만 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벌써 13년째 이같은 지원활동을 하고 있네요. ”

―현재 생활과 앞으로의 계획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유진벨 한국과 유진벨 미국을 동시에 운영하는데 늘 한국에서 불을 끄다 미국에 와서 불을 끄는 그런 생활의 연속입니다. 아직도 북한의 각 지방에는 결핵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아 당분간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이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제가 바라는 것은 어서 빨리 남북관계가 좋아져 제가 필요없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스티브 린튼 이사장은 누구

1950년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전남 순천에서 성장했다. 한국이름은 인세반. 연세대 철학과 졸업 후 미군에 입대 주한미군으로도 근무했다. 이어 미국 컬럼비아대 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고 남북한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 동아시아 연구소 한국연구센터 부소장을 지내다 1995년 북한의 식량난이 발생하자 유진벨 재단을 창설,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대북식량 및 의료지원사업에 나섰다. 빌리 그레이험 목사 방북때 통역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유진벨은 구한말부터 전라도지역에서 선교 및 봉사활동을 시작한 미국선교사로 린튼 이사장의 외증조부다. 린튼 이사장의 할아버지 윌리엄 린턴은 벨 선교사의 딸과 결혼한 뒤 전라도지역 선교활동을 했는데 이 가업은 린튼 이사장의 아버지 휴 린튼에게로 이어졌고, 린튼 형제들도 한반도관련 일을 하며 지낸다. 특히 막내동생 존(한국명 인요한)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으로 활동하며 대북의료지원사업을 돕고있다. 린튼 이사장에게 ‘영혼의 국적’을 물었더니 “내 동생 존은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존처럼 100%는 아니고, 아마 반반은 될 것”이라며 웃었다.


▼스티브 린튼 이사장이 지난해 5월 남포시 결핵요양소에서 후두결핵을 앓고 있는 북한 어린이를 안고 있다.
20080311010326231110021_b.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