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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 유진벨

[민족화해]“오늘보다 큰 꿈을 꾸는 이들이 세상을 바꿉니다”

유진벨 / 635

“남과 북이 평화와 화해를 향해, 그리고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물결. 때로는 굽이칠 수도, 조금 돌아갈 수도 있지만
결국은 하나가 될 물결. 전 다만 그 물결에, 그 꿈에 빠진 ‘손님’일 뿐입니다.”

지난해 11월 인세반(Stephen W. Linton) 유진벨 재단 회장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수여하는 제8회 〈민족화해상〉 개인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자신은 다만 후원자들의 정성을 대신 전하는 ‘심부름꾼’일 뿐이라는 인세반 회장. 하지만 인 회장의 열정과 믿음이 있었기에 유진벨 재단은 14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북한 결핵 퇴치 사업을 이어올 수 있었다.

지난 1995년 설립된 유진벨 재단은 대북 인도적 보건의료지원사업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7년 북한의 ‘큰물피해대책위원회/보건부’로부터 결핵 퇴치에 대한 공식적 협조요청을 받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유진벨은 그동안 북한 전역 80여개 이상의 의료기관에 결핵 퇴치 및 일반 보건의료 지원사업을 펼쳐왔다.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지원 사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국내·외 후원자들의 힘이 컸다. 인 회장은 〈민족화해상〉을 받아야 할 주인공은 바로 소리 없이 꾸준히 후원해주신  분들이라 말한다.

아울러 유진벨은 후원자들과 북한 의료기관과의 자매 결연을 맺어, 후원단체나 개인의 이름으로 지원물품을 전달해 왔다. 이는 후원자에게 책임감과 함께 보람을 줄 뿐더러, 지원의 투명성을 보다 담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결핵 퇴치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업인 만큼 후원의 지속성 역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유진벨을 후원하시는 분들은 어찌 보면 가장 현명하고, 또한 현실적인 분들이라 생각해요. 반드시 한국인이 중심이 되어 지원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누가 하더라도 제대로, 또한 반드시 필요한 시기에 도울 수 있다면 믿고 후원하겠다는 생각이 있으신 거죠. 물론 후원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그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요. 결핵 퇴치사업은 시기가 매우 중요해요.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면 영영 불치병이 되고 말아요.

하지만 북한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결핵 환자들을 모두 치료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당장은 불가능하죠. 때문에 유진벨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희는 다른 지원 단체들처럼 후원자분들을 모시고 자주 북한을 방문하지도 않았고, 또 그럴 이유도 없었어요. 이름 없는 수많은 후원자분들은 다만 유진벨이 하고자 하는 그 ‘목표’에 맞게 활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신 거죠. 언제나 그 분들의 현명함과 큰 믿음에 감사하고 있어요.”

 
신앙에 바탕한 믿음의 리더십

인세반 회장은 진정한 리더십은 단지 요란하게 앞에 나서 마이크를 잡고 떠드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리더십이라는 것. 때문에 그는 대북 지원사업,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노력의 길에 ‘오늘 보다 큰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장 드러나는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진중함과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을 말하는 것이리라.

북한의 보건의료 분야가 지금보다 개선되고, 북한 내 결핵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 이는 당장 공장이나 다리를 건설하는 것처럼 그 성과가 바로 눈 앞에 나타날 수 없다. 하지만 인세반 회장은, 그리고 유진벨을 믿고 후원해주시는 분들은 민족 간의 신뢰 회복과 보다 건강한 미래의 한반도를 꿈꾸며 묵묵히 사업을 이어왔다.

인세반 회장을 말할 때, 사람들은 4대째 이어오는 린튼 가(家)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야기한다. 재단의 이름이 된 유진벨 선교사(인세반 회장의 외증조부)부터 윌리엄 린튼 목사(조부), 휴 린튼 목사(부) 그리고 인 회장까지. 100년이 넘게 이어져 온 한국과의 인연을 말하는 것이다. 유진벨 선교사는 1895년 미국 남장로회에서 조선으로 파견돼 전라도 일대에서 선교 및 교육 활동에 헌신했고, 윌리엄 린튼 목사 역시 유진벨 선교사의 막내 딸 샬럿 벨과 결혼해 군산, 전주 등 전라도 일대에서 40년 동안 선교활동을 벌였다. 그는 대전대학(현 한남대학)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인세반 회장의 부친인 휴 린튼 목사는 전라도 도서지역에 200여 개의 교회를 세우는 등 선교활동을 벌였고, 1960년대 순천 일대에 결핵 환자가 늘자 결핵진료소와 요양소를 세워 봉사했다. 한편 1995년부터 유진벨 재단을 이끌고 있는 인세반 회장은 연세대학교와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철학 석사와 한국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1990년도 초반 3년간 컬럼비아대학교 한국연구소의 부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하버드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유진벨 재단 회장직을 함께 맡고 있다.

“저는 네 살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와 어린 시절을 전라도 순천에서 보냈어요. 하지만 가업이랄까요, 선조들이 하신 일을 단순히 이어가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물론 집안의 전통도 소중하지만,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결심한 것은 온전한 제 의지였다고 생각하거든요. 비록 이 땅에 주인공이 아닌 ‘손님’이지만, 신앙의 힘으로 이 사업을 지속해 나갈 것입니다.”

형제의 마음으로 대북지원 이어가야

유진벨 재단은 그동안 북한에 단순 지원이 아닌, 북한 스스로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북한의 의료기관들이 기본적인 질병 예방부터 검진·치료를 자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이다. 하지만 인세반 회장은 이러한 지원방식이 흔히 말하는    ‘개발지원방식’이라 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는 ‘생활지원’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동안 유진벨은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해왔습니다. 지원사업은 온전히 후원자들의 정성으로 하는 일입니다. 최대한 후원자들의 뜻에 맞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북한도 놀랄 만큼 거창하거나, 과시를 위한 사업은 하지 않았습니다. 전 남북 민간교류에 있어 ‘가족’, ‘형제’라는 인식이 먼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이죠. 마음에 안 들거나, 미운 남은 그냥 모른 채 하면 됩니다.

하지만 가족이라면, 형제라면 일부분 생각이 다르더라도, 때로 갈등하거나 반목하더라도 도울 수 있는 것은 도와야 합니다. 더구나 사람의 생명이 달린 질병 문제는 정치적 차원을 떠나 우선적으로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굳이 개발 지원이라 표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북한 스스로 결핵 환자를 100% 관리하고 치료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그것은 먼 장래를 두고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때문에 지금 우리가 돕는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야 할 가족을 돕는데, 그들의 생명을 구하는데, 그 어떤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때문에 인 회장은 남북관계가 어려운 현 상황에서도 생명을 구하는 결핵퇴치 사업에 있어서만큼은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는 현 정부에게 감사하다고 밝혔다.

통일의 그 날까지, 열심히 해야죠

약 3년 전부터 유진벨 재단은 일반 결핵환자에서 다재내성 결핵환자 지원으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다재내성 결핵환자는 일반 결핵환자보다 치료비용과 기간이 월등히 높다. 반면 회복율은 보다 낮다. 일반 결핵환자가 약 6개월에 걸쳐 치료가 이루어지는 데 반해 다재내성 환자는 2년 6개월에서 3년에 걸쳐 치료가 이루어진다. 이처럼 치료가 더 어려운 환자들을 유진벨에 부탁했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 당국이 유진벨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현재 유진벨은 550여 명의 다재내성 결핵환자 치료를 돕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일반 결핵 환자는 글로벌 펀드가 조직되어 보다 광범위하게 지원되고 있어요. 때문에 유진벨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심각한 환자들을 돕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죠. 다재내성 환자들은 3년 동안 책임을 지고 치료를 도와야 해요. 중간에 치료가 멈추어 버리면 영영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어요.”

그동안 유진벨 재단은 지원하고 있는 북한의 병원들을 방문해 제작한 영상물, 사진, 보고서 등을 통해 후원자들에게 알려왔다. 이는 지원 물품의 분배, 사후관리에 있어 보다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매년 1회 이상 해당 지역을 방문해 병원 관계자들은 물론 환자들과 만나 지속적인 지원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경험이 쌓여 지원 사업 계획을 보다 효율적으로 세우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2010년의 활동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의 일부를 보여주며 인세반 회장은 지속성과 투명성, 그리고 책임에 대해 말했다. 비록 화려하진 않더라도 꾸준히 돕는 것. 신앙의 힘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을 전하는 것. 그것이 참다운 지원이자 또한 ‘만남’이라고 그는 말한다. 어쩌면 유진벨 재단이 남북관계의 변화와 상관없이 사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진심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완치된 결핵환자가 종이로 만든 꽃다발을 목에 건채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 그 앞에 인세반 회장의 얼굴도 한없이 밝다. 다큐멘터리에 나타난 영상은 단순한 지원과 수혜의 장면이 아닌 사랑의 회복이자, 믿음의 회복 그 자체였다. 환자들이 치료를 모두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 환송행사를 인 회장은 ‘졸업식’이라 표현했다. 완치된 환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동안 자신들을 위해 지원해주고, 관심을 가져준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비록 얼굴도 모르는 남쪽의 동포들이지만,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인세반 회장, 그리고 유진벨 재단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바쁠 예정이다. 보다 많은 이들이 졸업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이 졸업식에 남북 모두가 함께 웃으며 축하해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당신은 언제나 옆에서 돕는 ‘손님’일 뿐이라는 인세반 회장. 하지만 남북 모두에게 이미 인 회장은 손님이 아닌 소중한 ‘가족’이다.

염규현 《민족21》기자

2011.01.03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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