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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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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유지 (Eugene Bell, 1868-1925)
한국이름 배유지로 불리는 유진 벨 목사는 전라남도 남장로교 선교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진 벨 목사와 로티 위더스푼 벨 사모는 1895년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 한국어 공부를 2년간 한 후에 유진 벨 목사는 목포에 남장로교 선교부를 열어달라고 요청했고 나중에 광주에 또 다른 남장로교 선교부 설립를 도왔습니다. 또한 전라남도 지역에 수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유진 벨 목사는 목포에 정명학교와 영흥학교, 광주에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 그리고 광주 최초의 서양 병원인 제중병원(현, 광주기독병원)과 같은 다양한 기관의 설립을 도왔습니다. 로티 위터스푼 벨 사모는 33세의 나이에 한국에서 소천하였고 서울 양화진 선교사 묘원에 안장되어 있고 유진 벨 목사는 1925년에 소천하여 광주 선교사 묘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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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돈 (William A. Linton, 1891-1960)
윌리엄 린턴 목사는 남장로교 선교사로 1912년 한국에 도착하셨습니다. 그 후 40년 동안 교사와 교장으로 활동하였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는 한남대학교의 전신인 대전대학 설립을 도우며 교육사업에 헌신하였습니다. 윌리엄 린턴 목사는 유진 벨 목사의 딸 샬롯 벨과 결혼했습니다. 샬롯 벨 사모는 남장로교 선교회가 세운 전주 기전여고와 전주 신흥고 등에서 교사와 교장으로 섬겼습니다. 또한 윌리엄 린턴 목사는 수업이 없는 날에는 시골 교회에서 설교하거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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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휴 (Hugh M. Linton, 1926-1984)
휴 린턴은 윌리엄 린턴 목사의 셋째 아들로 군산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후 1953년 한국으로 돌아왔고 부인 로이스 린턴과 함께 전라남도 순천시의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휴 린턴 목사는 교회 개척에 전념했고 1984년 소천할 때까지 전라남도와 주변 섬에 200개 이상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1960년대 순천 일대에 큰 수해가 발생한 후에, 부인과 함께 결핵 진료소와 2개의 요양소를 설립했습니다. 로이스 린턴은 남편이 소천한 후에도 결핵 환자를 위해 헌신하다 1994년 은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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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세반 (Stephen W. Linton)
한국 이름 인세반으로 불리는 스테판 린턴은 휴 린턴 목사 부부의 둘째 아들로 남한의 전라남도 순천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1979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대학원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평양 세계 탁구대회’를 관람하기 위해 평양에 방문했습니다. 이 방문을 계기로 북한과 관련된 연구와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 스테판 린턴 박사는 유진벨재단을 설립했습니다. 2020년 펜데믹으로 모든 인도주의 지원 프로그램이 중단되기 전까지 유진벨재단은 북녘의 다제내성결핵 진단과 치료에 집중하였습니다.
재단법인 유진벨 대표자 : 스테판윈린턴 사업자번호: 105-82-1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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